몇배? 2배? 3배?

Posted 2008. 5. 28. 08:24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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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가씨 이름은 메이 달링 울프~ ㅋ 왠 이름이 이러냐 하문
엄마랑 아빠 성이 '달링 울프' 이고 이름은 메이다. 엄마가 아시아, 특히 일본 문화를 공부하시는 교수님인 관계로 매 여름마다 TU japan에서 강의를 하시고, 그러다 보니 일본식 이름을 지어 주셨다. (참고로 언니 이름은 헤나)

지원이 선배언니 졸업기념 파티에 갔다가 이녀석이랑 놀아주게 되었다.
그날 저녁에 잘때 삭신이 쑤셔서 죽을 뻔 하긴 했지만... ^^;
같이 돌던 기념으로 사진을 같이 찍었는데... 내 얼굴이 거의 2~3배는 더 커보인다.

그런데 좀 의문사항. 왜 어디를 가도 애들은 나를 타고 노는것을 좋아할까?
1. 인형같다. (큼지막한 곰인형)
2. 타고 놀아도 안 죽을것 같이 튼실하게 생겼다.
3. 만만해 보인다.

흠... 어케 가는 곳마다 애들이 빤히 처다 보다가 조금만 친해지면 내 위에서 날아 다니시는지
앞으로 내 아가가 태어나면 난 고난이 뒤따를 듯 하다.

한숨만 나온다

Posted 2008. 5. 27. 06:49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블러그를 하나만 가진것이 아닌지라
정치적 성향이나 사회 비판적인 내용이 담긴 글은 여기에 남기고 싶지는 않았는데
하두 답답해서 여기다가 몇줄 남겨 봅니다.

지금 미국에 거주하는지라,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기 힘듭니다.
하지만, 조각조각 들어온 바에 따르면
한나라의 통수권자는 다른 사람의 비판을 못 견디는 소인배 라이프를 즐기신다 하시고
그 아래 계신 분들은 자신의 자리보전을 위해서 양심도 버리셨다 하시고
국민들은 화가나 있으며
자칭 언론인 이라는 분들은 정부의 눈치를 보시느라 제대로 보도도 못 한다고 하네요.

예전부터 아내에게 말 했지만, 제가 아는 어느 교수님 처럼 한국에 들어가면 집 대문에 걸어놔야 할 듯 한 문구입니다.
'저희집은 애완동물, 정치인, 그리고 기자들의 출입을 금합니다.'
애완동물은 와이프가 동물을 좀 무서워 해서 그렇고, 나머지 분들은 제가 좀 많이 싫어합니다.
물론 와이프 친구중에 기자가 있어서 전면 금지는 그렇지만, 가급적이면 양심을 잘 팔아잡수시는 기자분들과 양심이 과연 있는지 궁금한 정치가 분들은 가급적이면 만나고 싶지도 않습니다.

대인이라면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뜻이 대의라면 당당하게 나서서 설득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타국의 정상에게는 고개를 숙이며 자국의 국민들에게는 어거지를 쓰시는 당신은 진정한 소인배 올시다.

경 축!!!! 지원이 디펜스 성공!!!!

Posted 2008. 5. 21. 04:30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년 5월 20일 오전 11시 30분
나의 사랑하는 아내 윤지원 양께서 Ph.D Candidate가 되셨다.
이번 한학기 동안 종합시험과 논문 기획서 구술시험 (이걸 한국서 뭐라 하는지 몰라서 논문 기획서라고 적었는데... 영어로는 그냥 proposal defence)까지 치뤄 낸 지원이가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나 때문에 이렇게 힘든 시간을 이겨내준 여보 고맙고 사랑해!

오늘은 좋은 날!!!

Posted 2008. 4. 7. 01:00 by 쪈

오늘 예배 드리면서..

나같이 부족한 사람에게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크다는 걸 새삼 다시 느꼈어.

 

부부란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주면서 온전한 하나가 된다는데, 내가 얼마나 부족하면 하나님께서 오빠처럼 완벽한 사람을 부부라는 이름으로 나와 함께 하게 하셨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은 오빠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게 분명해 ^^

누가 봐도 정말 오빠가 너무 아까운데 우리로 하여금 함께하도록 해주셨잖아 ^^

 

정말 모든 것이 너무 고맙고, 또 감사해.

 

부족한 내 곁에서 큰 사랑으로 나 품어주고 함께해 준 것도 고맙고

하나님의 꿈을 알아가고 이루어 나아가는 삶의 이 여정 속에서, 하나님을 더욱 풍성히 누리도록 해준 것도 너무 고맙고,

이 땅에 무엇보다 태어나서 내 곁으로 와 준게 가장 고맙다 ^O^

 

우리 신랑, 생일 너무너무 축하하고,

정말 사랑해

그떄는 몰랐던 것들

Posted 2008. 4. 4. 11:55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어머니가 말씀 하시곤 했다.
사랑을 하면 사람이 변한다고...
어릴적 나는 그 말이 무었인지 몰랐다.
그냥 나 하고싶은대로 살면 되고 그냥 그렇게 살아 가기만 하면 되었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 조금은 그 말이 무었인지 알 듯 하다.

2002년 12월에 구미로 내려가서 파견근무를 시작한 이후 지금의 아내인 지원이와 매일 전화로 그 아쉬움을 달래곤 했는데 어느날 어머니 생각이 나서 어머니께 매일아침 문안인사를 드리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니가 사랑을 시작했구나 했다. 난 그때는 어머니가 왜 이런말을 하시나 했다.

2003년 7월에 지원이와 함께 태국집으로 갔다가 홀로 돌아왔다. 태국에 남아있던 지원이에게 전화 통화를 하는데 눈물이 났다. 누군가와 떨어져 있는 것이 그렇게 슬펐던 것이 처음인것 같았다. 그전까지는 누군가와 헤어진다는 것은 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는데...

지금은 무언가 다름이 느껴진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로인해 기쁘다는것이 너무 행복하다. 그래서 그런가? 지원이를 위해서 음식을 만들어주고, 함께 공부를 하고...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아버지가 '다우미와 지원이는 나의 큰 기쁨이다' 라고 말씀해 주신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돈다. 전에는 느끼지 못한 감정. 나로인해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이 행복해 진다라는 너무나도 간단한 사실이 느껴진다.

지금 난 너무나도 행복하다. 어린시절, 나밖에 모르던 시절을 지나 이제 함께라는 말의 의미를 하나둘씩 배워나간다. 난 너무 행복한 남자다. 아내와 내가 결혼식장에서 '함께'하자고 했던 약속을 내 몸으로 살아내 가기 시작하고 있다. 처음에는 지원이랑 나랑 둘이서, 그리고 하나님과 지원이와 다우미가, 이제는 내 가족들 모두 함께 말이다. 소망이 있다면, 10년 뒤에는 내가 이 글에다가 추가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다우미와 지원이와 우리 가족들과 그리고 사랑하는 내 민족과 '함께'하는 행복에 겨워 살고 있다라고.

사랑합니다 목동에 계신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방콕에 계신 아버지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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