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적인 학기의 마지막! 그리고 맛난것!

Posted 2007. 12. 18. 00:21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울 쪈은 지금 교수님 만나러 갔어요~
이번 학기 마지막을 정리하러~
TA하면서 채점한 결과물을 (누구한테는 기쁨을, 누구한테는 절망을 전달하러) 갔네요

한학기 동안 수고 했습니다~ (물론 나도~ ㅋㅋㅋ 이유는 저 시험지 각 파트의 점수 내가 다 더해서 주었다는~)

정말 식당에서 조차, 그리고 자동차 엔진오일 가는 곳에서도 열심히 채점한 당신~ 이제 다음 단계로~ (실은 한국 언론재단에서 쪈에게 글하나 적어 달라는 요청이 있는데~ 시간이 너무 뻑뻑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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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채점중~ 저건 몇점짜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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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마셔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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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난 셀러드~ 이 드레싱은 한국이랑 일본집에서만 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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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만 가져다 대면 저런 장난스런 표정이.. 다빛 다안이는 삼촌 닮은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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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우미가 시킨~ 도시락~ 레어로 주세요~ 라고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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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어를 요청 했으나~ 거진 미디엄 수준으로 구워온 스테이크... 역시 일본놈들에게는 레어는 무리인가? 한번도 레어로 나온적이 없어~



참고로 이 사진들은 모두 아버지 카메라 테스트를 위하여~ 새로산 카메라로 찍었습니더~

싸이 군입대를 보면서

Posted 2007. 12. 15. 09:41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사실 내가 싸이 편을 들 입장은 아니지만
할 말은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남긴다.

사람들은 싸이가 복무 도중에 일을 잘 했는가 못했는가에만 초점이 있는 것 같다
마치 재 입대가 당연하고, 고소하다는 생각이 있는것 같다.
만약 그가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서, 제대로 근무를 안 했다고 하면 당연히 처벌을 받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지금의 사태는 무언가 잘못되도 너무나 잘못 되었다.
'일사 부재리'라는 법칙이 있다. 한번 내린 판결에 대해서 다시 번복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대한민국은 법치 국가이다. 이미 소집해제를 내린 입장에서 그를 번복 한다는 것은, 대한민국 병무청과 법무부는 자신이 한 말을 믿지 말라고 선전하는 것과 동일하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한입을 가지고 두말을 하는 정부 기관을 누가 믿을 수 있단 말인가? 병무청~ 누가 군바리들의 집단이 아니랄까봐 이런 억지를 부리는지 모르겠다. 만약 싸이군이 잘못 했다고 판단 했으면 복무중 그를 현역으로 보냈어야 하지 않는가? 공평하게 처리 하려면, 당시 그는 복무를 잘 했다고 보고한 사람을 파면 및 고발을 해야 하는것이 맞지 않은가? 그런 절차없이 본보기 수사를 하는 병무청과 그 편을 들어주고 있는 법무부는 과연 공평과 공의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가 잘못했다면, 그에대한 책임을 물을때 공평한 잣대로 물어야 할 것이다.

오늘 또다시 대한민국 정부에 대하여 실망을 할 뿐이다.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인인 동시에, 정부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는 국민이다.

대한민국 정부여~ 생각좀 하고 살아라. 무뇌충 대한민국 정부여~

롤 모델

Posted 2007. 12. 13. 13:52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살면서 가장 하기 싫었던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합법적인 것 중에서는 '공부'라고 말 할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대학은 들어 갔지만~ 공부를 안 해버린지라~ 학점이 바닥 근처를 구경시켜 주기도 했었다. 그런 내가 대학원 수업을 듣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임.

그 중심에 내 아내인 지원이가 있다는 것은 그저 감사할 나름이다.

그 공부하기 싫어 하는 나를, 오로지 함께 있고 싶다는 이유로 도서관에 데리고 갔으며, 지금은 대학원 수업을 듣고 있게 하였다. 그런데 사람이 참 신기하다. 항상 보는 사람이 지원이 이고, 그런 지원이를 보자면 아무리 내가 열심히 공부해도 부족한 생각이 드는것은 왜일까?

그렇게 한학기가 지나간 지금, 첫 학기를 무사히 마쳤다. 처음에는 수업을 따라가기도 어려워서 무지막지한 예습과 복습을 거듭했다. 솔직히 대학 다니면서 예습은 거의 안했으며, 복습은 가뭄에 콩 나듯이 했다. 숙제 때문에 한 복습이었긴 하지만... 암튼 열심히 하긴 했다. 중간중간 조금씩 논 것이 찔리긴 하지만~ 나름 릴렉스의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 해야지. 아직 전체 성적은 나오지 않았지만... 중간고사 성적이랑 숙제 점수를 대충 보니~ 잘하문 두과목 다 4.0을 받을지도.. 나 스스로도 믿기지 않은 성적들 이었다. 그리고 오늘 프로젝트 발표날.. 감히 잘하면 1등도 해 보겠군 싶은 마음이 들었다. 유일하게 프로젝트를 완료 했으니 말이다.

암튼 각설하고, 사람은 누구를 사랑하고, 얼마를 사랑하는지에 따라 충분히 변한다고 생각한다. 나를 봐라~ 총 학점이 2.8x의 점수를 자랑하던 녀석이... 결혼하고나서 이렇게 변한것은 내가 나의 아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주는 것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난 그냥 와이프 따라 다니면서 공부했을 뿐인데~

암튼 떨리는 맘으로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두과목 모두 A-이상이면 합격 시켜 줄 수 있다고 했는데 잘 될 것이라 믿고 있다. 내일이면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 두근두근~ 자 한국에 F1으로 비자 변경하러 가자고!!!!!

고구마 피자를 만들어랏!

Posted 2007. 10. 29. 09:15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오늘 교회 갔다가 오는길에 Trader joe에 다녀 왔습니다.
매주 가는 곳이지만 아직 거기 있는것을 다 먹어보지는 못 했습니다.

집에 먹다가 남은 고구마가 냉동기에서 추워하고 있기에
이녀석을 어떻게 환생시켜서 음식으로 승화 시킬까 고민 하다가 아내를 위하여 고구마 피자를 하기로 결정하고 피자를 위한 재료를 사 왔습니다.

필요한 재료
도우(dough): 밀가루 반죽. 직접 만들수도 있지만 힘도 들고, 잘 만들 자신도 없어서 구매. 단돈 99센트!
피자 소스: 토마토와 각종 향신료를 넣어서 만든 소스. 이것도 만들 수 있지만 시간 관계상 구매
치즈: 파마산 치즈라고 하던가? 하얀색의 치즈다. 요즘은 채 썰어 놓아서 만들기 편다하.
고구마: 12인지 피자 기준으로 고구마 중짜 하나면 된다.
설탕: 고구마의 단맛을 올려 준다. 하지만 너무 많이 넣지는 말것
그외 필요한 토핑들을 올린다. 오늘은 간단하게 만들기 위하여 페퍼로니를 썼다. 너무 단 고구마의 맛을 조금은 안정시켜 주는 맛을 내 준다.

일단 도우를 실온에 꺼내 놓는다. (도우 뒤에는 20분 정도 방치 해 놓으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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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죽이 된 도우


적당한 사이즈로 편다. 아래 판은 타겟에서 구매한 4불짜리 피자 팬~
팬 윗면에 아주 얇게 올리브 오일을 발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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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소스 입히기



특별히 다른 도구를 쓰는것이 아니라 숫가락으로 푹 퍼서 입혀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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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와 치즈 그리고 페퍼로니를 얹습니다.


이때 고구마는 의견이 분분 하네요. 어떤 분들은 통으로 썰어 놓는다고 하는데 저는 군고구마를 으깨서 넣었습니다. 고구마의 단맛을 높이기 위하여 약간의 설탕을 넣어 으깼는데요, 너무 많이 넣으면 설탕맛만 나이, 조금만 넣습니다. 그리고 치즈는 저것보다 조금 더 얹으시기 바랍니다. 좀 아쉬운 느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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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 고구마 피자


오븐에서 구워 나온 고구미 피자 입니다.
뒤쪽 빵을 너무 두껍게 만들었나 봅니다. 다음에는 12인지가 아니라 13인지 까지 키워도 충분히 맛있게 먹을 수 있을 듯 싶습니다.

솔직히 저는 피자 하면 치즈피자나 페퍼로니 피자를 주로 먹습니다만, 아내가 한국가면 젤 먹고 싶은 음식중에 하나가 고구마 피자~ 하며 노래를 불러서 한번 만들어 봤습니다.
첫 작품 치고는 먹을만 하더군요. 이제 한국가서 먹을 필요 없겠는데요???

여보 맛 있었나요?

우리 만난지 5년...

Posted 2007. 10. 18. 08:35 by 쪈

오빠~ 내 블로그에 올린거, 여기에도 똑같이 올려요.

우리 만난 지 벌써 5년..
먼저 손내밀어줘서 고맙고..
결혼하자고 해줘서 고맙고..
결혼해줘서 고맙고..
매일매일 더 사랑해줘서 더 고마워요.

나도 아주 많이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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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0월 17일. 목산교회 편집실에서 그를 처음만났다.
편집의 특성상 편집기에 일 시켜놓고 기다려야 할때가 많았는데, 그때 참 많은 이야기를 했다.
당시 만난 곳은 목동, 내가 살던곳은 삼성동..
교통편이 복잡해서 전철끊기기 전에 가겠다고, 다음에 다시 오겠다고 했더니 하던거 마져 하고 가라고 그가 날 잡았다. 집까지 데려다준다고. "삼성동까지요?" "응, 데려다 줄게. 마져 하고 가." "어차피 오늘 끝내지도 못할거 같은데 다음에 다시 올게요." "그래도 최대한 많이 해놓고 가면 좋잖아." 그렇게 날 설득하던 그의 말대로 난 새벽한시까지 거기에 있었고 그는 삼성동까지 날 데려다 주었다.
주위에 owner driver 가 거의 전무하던 시절, 밤늦게 승용차 앞에 앉아 서울밤거리를 달려본게 태국으로 떠난 이후로 처음이었으니까 8년도 넘게 난 서울야경을 버스가 아닌, 자가용안에서 본거다.  편집하면서, 그리고 차안에서 말이 참 잘 통했다는거.. 그리고 그날 본 야경이 참 이뻤다는 거.. 너무 이쁘다고 흥분하는 나를 참 재밌게 그가 쳐다봤다는게 기억이 난다.

그후로 편집때문에, 그리고 원본 테잎을 받으러, 그렇게 몇번을 더 만났고 통화도 몇번 했다. 업무적인 이야기 말고도, 사는 이야기, 세상이야기, 신앙이야기 등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너무 괜찮은 사람인듯해서 내 친한친구를 소개시켜주려고 했었더랬다.  소개팅하라고 설득하던 (전화로) 나에게 그가 내던진말... "난 네가 좋은데 넌 왜 자꾸 네 친구를 소개시켜주려고 하니?"

훗.. 사귀자는 오빠의 말에 o.k. 를 하기까지 3주도 더 걸렸었다.
막상 사귀고 나서, 싸우기도 많이 싸웠고..
이회창을 지지한다는 말에 너무 충격을 받아 대선 다음날 그에게 헤어지자고 까지 했었다.  (지금생각하면 웃기지만 당시 나의 충격은 엄청났다.) 하지만 그는 날 붙잡았고.. 그렇게 몇번의 크고작은 위기를 넘기고 난 유학을 갔다. 

유학을 갈때만 해도 이 사람과 언제까지 사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근데 몸은 멀어져도 진심은 이어졌다.  워낙 결혼이란 제도에 불신이 많았던 나였고, 또 35살전에는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나였기에 결혼직전까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지만..
결국 26살에 "이 사람이었기에" 유부녀가 됬고..
"이 사람이기에" 지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결혼하면 남자들이 많이 변한다던데..
울 신랑은 결혼하고 나서 더 착하게, 더 신실하게, 더 멋있게 변한 케이스다.
그와 함께 하는 이 순간이 너무 감사하고, 내가 태어나서 만났던 그 누구보다, 그리고 그 어떤 위인보다 울 신랑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결혼하고 2년이 더 지난 지금.. 매일매일 그가 더 좋아진다.  그와 삶을 나누고, 생각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고, 시간을 함께 하면서.. 이제껏 살아보지 못한 또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느낌이다.

살아있다는 것이, 그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와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이 미치도록 좋다.  연애할때보다 결혼하고 나서, 결혼초반기 보다 지금이, 그를 더욱 사랑하는 나 자신을 본다.
앞으로 50년, 아니 죽고나서까지도.. 영원을 함께 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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