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3가 면식기행

Posted 2008. 8. 19. 10:16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이 글은 펜 동호회 회원이신 김상묵 님의 글을 퍼온 것 입니다.
원래 면식을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니나, 오랜만에 면에 대한 글을 보다보니 입에 침이 고여서 오늘은 점심에 짬뽕을 먹고 왔습니다. 물론 여기 나온 중국집은 '굴'짬뽕인데 지원이랑 저랑 둘 다 굴은 싫어 하기 때문에 가지는 않을 듯 싶습니다. 하지만 다른 집들중에 최소한 한두곳은 다음에 한국 가서 꼭 들려 보고 싶습니다.

을지로3가역 근처에 위치한 연구소에 자주 들리게 되면서 가 본 근처의 면요리로 유명한 식당들입니다.


을지면옥
을지로3가역 5번출구
평양냉면으로 서울에서 열손가락안에 든다는 집입니다. 주로 나이드신 단골 어른신들이 많이 오시는 듯합니다.
대한극장 뒷편의 필동면옥, 의정부 평양면옥이 이곳과 혈연관계(남매지간)라고 하는데 정확한 촌수는 확실치 않습니다.
고추가루와 파가 뿌려져 나오는 육수맛이 깔끔합니다. (필동면옥도 마찮가지로 고추가루를 뿌림)


동경우동
을지로3가역 8번출구
을지로연구소에 오면서 파카51님 덕분에 알게 된 집이지만, 제 주위에도 이미 10년넘게 단골인 사람이 있더군요.
저는 항상 오뎅우동과 튀김우동사이에서 고민을 하지만, 요즘은 워낙 더워서 여름에만 하는 냉메밀 곱배기 한판 덕분에 선택의 고민을 덜었습니다. 저렴한 가격과 평균이상의 훌륭한 국물맛이 일품


우래옥
을지로4가역 4번출구
진한 육수맛이 인상적인 평양냉면집입니다. 인테리어 및 종업원 서비스만큼이나 값도 비쌉니다. 예전에 이곳 우래옥 주방장님이셨던분이 최근에  방이동 벽제갈비의 자매브랜드인 봉피양에 근무하시면서 방이동 봉피양 냉면이 최고라는 말이 있긴 합니다만 여전히 손가락에 꼽을 만한 집임에는 변함없는 듯합니다.
언젠가 평양 옥류관 냉면을 한번 먹어 보는게 소원이긴 한데, 그곳은 육수를 꿩대신 닭이라고 닭고기육수를 쓴다고 합니다.


춘천막국수
을지로4가역 1번출구
가장 최근에 펜후드분들께 소개해드리고 우르르 몰려가서 특곱배기를 시켜먹은 집 (특과 보통의 다른 점은 닭고기가 들어가냐 아니냐의 차이)
개인적으로는 육수를 넣어가며 비벼먹는 춘천식보다 물냉면처럼 먹을수 있는 봉평막국수를 더 좋아하긴하지만 함흥냉면과는 다른 특유의 맛이 춘천막국수에는 있는 듯합니다.


안동장
을지로 3가역 10번 11번출구 사이
중국집입니다. 종업원들이 자기들끼리는 중국말로 대화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샤근샤근한 서비스는 기대 안하는게 좋습니다.
중국집 메뉴의 영원한 라이벌 짜장면-짬뽕의 딜레마는 이곳에선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냥 짬뽕시키면 됩니다. 진한 국물맛이 일품입니다. 여지 까지 제가 먹어본 짬뽕중에 세번째로 맛있는 집이였습니다.
사실 짬뽕이라는 것이 재료비만 아끼지 않으면 정말 맛있는 메뉴이긴 한데 동네의 평범한 중국집에서는 육수부터 해서 맘에 별로 안들기 마련인데 이곳은 육수부터 풍성한 해물까지 정말 먹을 만한 짬뽕을 만듭니다.


다음주쯤에 을지로 연구소에 갈때는 충무로쪽 칼국수집에 가자고 해볼 요량입니다.


D-7

Posted 2008. 8. 19. 03:10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정확히 1주일 남았군요.
이제 1주일후 이시간 쯤이면 제 아내는 디트로이트에 있을 듯 싶습니다.
그리고 1주일하고 몇시간 뒤 쯤이면 필라델피아에서 재회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대가 많이 됩니다.
정말 아내와 제가 만날 그 날이 기대가 됩니다.
어떻게 변했을지도 정말 궁금합니다.
무려 8월 15일에 미장원 다녀 왔다고 하면서도 사진을 안 보내 주는것으로 보아 깜짝 놀라게 해 주려는 걸까요? (이런 부분에서는 울 색시는 참 게으릅니다.) 암튼 한시간이라도 빨리 보고픈 마음 여러분은 아시련가요?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조금 아프더라도

Posted 2008. 8. 15. 13:30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만년필을 산 다음에 내가 마음 먹은것은 내 글씨를 바꿔 보겠다는 것 이었다.
처음에 비해서는 많이 좋아 졌다고 생각 하긴 하지만, 아직 까지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특히 한글을 쓸 때 더 어렵다. 영어는 참 단순한 알파벳 아니던가? 어짜피 알파벳 하나씩 적어 내려가다 보면 단어가 되고, 그 단어가 모여 문장이 된다. 그러나 한글은 참 오묘하다. 특히 'ㅎ'같은 녀석을 밭침이 있는가, 밭침이 없어도 '하'라고 적을때와 '호', '후'를 적을때 모두 크기가 달라져야 한다. 그래서 매번 글짜의 크기를 일정하게 맞추지 못해 엉망 진창이 되곤 한다. 그런데 최근에 배운 사실중에 글씨를 이쁘게 쓰기 위해서 바른 자세를 잡으라고 하는 내용이 있었다. 그중에 겨드랑이를 가급적 붙이지 말고 손목이 아닌 팔 전체로 글을 적어 내려가라고 했다. 문제는 내가 그렇게 적어 본 적이 없어서 아직도 완전히 자세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세를 잡을때 마다 어께에 통증이 온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위에서 아래로 긋는 선이 팔을 조금 겨드랑이에서 떨어 트렸을 뿐인데도 더 바르게 내려온다는 사실이다. 이 작은 사실이 나에게 많은 것들을 느끼게 해 준다. 조금 힘들더라도 천천히 서두르지 말고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내가 30년이 넘도록 만들어온 습관에서 벗어 나는것이 어디 그리 쉽겠냐 하는 것이다.

이 나라도 그렇지 않을까? 대한민국 사람들의 일반적인 특징이 '빨리빨리'다. 일단 후다닥 해 보고, 안되면 말지 하는 어쩔떄는 도움이 되지만, 어쩔때는 독이되기도 하는 특성이다. 오늘도 나도 똑같은 실수를 했다. 몇일전에 사온 만년필에 이상이 보이기에, 정확하게 요령을 배우지 않은 상태로 대충 알아낸 대로 만년필을 분해 하다가 부셔 버린 것이다. 과연 내가 제대로 배우고, 제대로 익힌 다음에 고치기 시작 했으면 만년필이 부서 졌을까? 이제 대한민국이 변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먼져 울 대통령 부터 빨리빨리 밀어 붙이는 버릇부터 좀 고치셨으면 한다. 혹여나 자기가 생각하는거 다른 사람들이 방해 할까봐 마치 경마장의 경주마 처럼 옆을 보지 못하고 앞만보게 하고 달려가듯 채칙질을 해 대신다. 중요한 일에 대해서 좀 더 논의하고 좀 더 고민하고, 자신이 믿는 것이 정말 나라를 위한 것이라 하면 사람들의 공감대를 얻어 내야 하는것 아닌가? 자신이 하는 일에 확신이 없어서 그런것 일까? 본인이 생각해도 시간 끌면 본인의 생각이 어리석은 생각이란게 들킬까봐 그런것일까? 그런게 아니라면 좀 더 마음을 열고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는건 어떨까? 비록 평생 안 해 본 것이라 힘들겠지만, 조금씩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하다보면 내 악필이 조금씩 바뀌면서 편하게 글 쓰게 되듯이 당신도 가능하지 않을까? 조금만 마음을 여유있게 살아보기 바란다. 불쌍한 대통령이시여. 단지 이 말을 듣지도 못할꺼 같고, 들어도 마음이 변하지 않을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난 내 말을 하고 싶다. 난 민주주의의 나라 대한민국 국민이니까.

워싱턴에서 데리고 온 만년필들

Posted 2008. 8. 12. 08:57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오늘 드디어 만년필 사진을 찍어서 올려본다.
토요일에 총 3개의 만년필이 내 손에 들어왔다.
그중 두개는 워싱턴에서 열린 PEN SHOW에서 직접 구매 해 온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미국 Fountain Pen Network란 곳에서 중고로 구매 한 제품이다. 지난번에 ebay에서 온 제품은 생각 보다 상태가 좋지 않아서 한국에 가면 수리를 받으려고 한다. 안되면 미국내 AS센터로 보내야 할 듯 싶다. (참고로 미국내 AS센터는 우리집에서 20분이면 갈 수 있는거리인데 직접 AS를 받아 주는지는 모른다. 나중에 메세지 보내 봐야 할 듯)

자 그럼 소개 하겠다. 이번에 장터에서 구한 펠리칸(Pelikan)사의 M100 흰둥이다. 만년필 촉은 EF (Extra Fine)이며 재질은 Steel이다. 촉을 검정색으로 코팅해 놨기 때문에 어떤 색의 잉크를 넣었는지 촉을 보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잉크를 몸통의 투명한 창을 통해서 확인 할 수 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 펠리칸 모델 중에 가장 저렴한 가격대를 형성하며, 지금은 단종 되었다. (M150이 최 하위 모델이다.) 크기가 크지 않으므로 평소 필기하기에는 조금은 어려울 지도 모르지만, 다이어리에 끼워넣고 다니면 어울릴 듯 하다. 필기감은 부드럽다. 이 한마디로 대신하고 싶다. 구매 가격은 41.5불. 원래 40불 이었는데, 배송할때 보험 들어서 보내 달라고 부탁하는 바람에 1.5불을 더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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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보니 실수로 M150이라고 적어 놓았다. 그런데 이녀석은 M100이 맞다.

이제부터는 펜 쇼에서 구해온 녀석들이다.
먼져 Parker에서 만든 Vacumatic 제품이다.
이 제품은 4번의 큰 변화가 있던 모델인데, 내가 가지고 있는 제품은 마지막 세대인 3세데 제품이다. 희안하게 첫 모델을 0세대라고 분류 하는게 뭔가 이상한 느낌이긴 하지만, 수집가들이 3세대라고 하니 나도 3세대 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전세대 제품들은 2 tone nib (촉이 금색과 은색이 섞인) 이지만, 3세대 제품만은 1 tone nib (한가지 색갈만 사용한) 이다. 사람마다 기호가 차이가 있고, 나도 원톤 보다는 투톤을 좋아하지만 이상하게 이녀석이 끌렸다. 14k 금으로 만든 제품이며, 굵기는 F (Fine)사이즈 이다. 이 만년필은 1945년에 생산된 제품으로 어머니가 태어나기 전에 생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좋은 상태로 보관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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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년필을 구매할때가 가장 재미 있었던것 같다. 보통 구경하고 있으면 그렇게 적극적으로 판매하지는 않았는데, 딱 한군데서 주인 아져씨가 나에게 흥정을 먼져 걸어 왔다. 미국에서는 펜쇼에 가는 사람들을 크게 2부류로 나눈다. 사용자 그룹과, 수집가 그룹 이 두가지 부류가 가장 큰 그룹이며 먼져 나에게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부터 물어 보았다. 나는 역시나 사용자 그룹이었다. 그는 나에게 어떤 브랜드를 선호 하냐고 물었지만, 만년필 만져본지 1개월도 안된 내가 무었을 알겠는가 싶었다. 하지만 그런 말 하면 좋지 않을 듯 해서 내 예산인 100불을 넘지 않는 만년필을 찾고 있다고 하였다. 그는 몇몇 펜들을 보여 줬지만 한국 사람들이 선호하는 얇은 펜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또한 상당히 낡은 펜만 보여주고 있었는데 희안하게 이녀석이 눈에 들어 오는 것이었다. 한번 적어 보라는 말에 펜을 잡아 보았는데 마음에 드는 굵기에 살짝 서걱 거리는 느낌이 드는 펜 이었다. 가격표가 궁금해서 스티커를 봤는데 한쪽면엔 $175가 다른면엔 $.75가 적혀 있었다. 그래서 이 가격이 175불인지 75불인지 물어 보았는데 그는 만년필 있던 주변의 만년필 가격을 쭈욱 보더니 75불만 내라고 했다. 기분좋게 사가지고 와서 이 만년필의 정보를 알아보기 위해서 웹서핑을 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세대 제품들의 최저 가격대가 100불은 넘고 있었고, 나와 같은 모델이 200불이 넘는 제품도 있다라는 것 이었다. 아무래도 아져씨의 실수(?) 또는 은혜로 인해 무려 100불이나 깍아서 사게 된 것이다. 그날 들인 기름값 + 고속도로 통행료 + 밥값을 지불하고도 남는 돈이 내게 돌아온 것이다. 하하하~ 아져씨 복받으실꺼에요.


마지막 제품은 Sheaffer사의 40년대쯤 만들어진 제품이다.
별로 인기가 없는 제품인지 몰라도 정확한 자료를 찾기가 어려웠다. 단지 촉에 3이라고 적혀 있어서 그것으로 찾아 보았더니 촉은 14k 금으로 만들어진 제품이라는 것과 비슷한 모델이 1946년도에 생산된 제품이라고 하는것으로 보아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 진 것이 아닌가 싶다. 재미 있는것은 만년필 촉을 만들던 사람의 센스가 촉에 들어 있는데, 촉에 하트 문양으로 구멍을 내 놓았다. 보면 볼수록 재미난 모양이다. 촉의 굵기는 EF이며, 내가 가지고 있는 만년필 중에 가장 얇게 써 진다. 덕분에 가장 서걱 거리는 소리를 내 주고 있다. 크기는 앞에서 올려 놓은 M100모델과 비슷하며, 역시 다이어리에 놓고 쓰면 좋지 않을까 생각 중이다. 혹시 이 모델에 대해서 정보를 아시는 분이 있으시면 리플 달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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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사진은 크기 비교하기 위해서 찍은 사진이다.
비교를 위해서 Lamy 사의 Vista모델을 같이 놓았다. 처음에 Vista샀을떄는 이정도로 큰지 몰랐었는데, 내가 작은 펜들을 사서 그런지 이녀석이 이렇게 크게 보일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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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부터 Lamy Vista, Parker Vacumatic, Pelikan M100, Sheaffer ?? 이다.
??는 모델명을 모른다는 뜻이니 구박하지 마시기 바란다.

워싱턴 다녀오는 길

Posted 2008. 8. 10. 10:40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오늘 Washington D.C.에 다녀왔다.
요즘 푹 빠져버린 만년필 쇼를 워싱턴에서 한다는 소식을 듣고, 아침 6시에 기상하여 무려 왕복 6시간의 거리를 달려서 다녀왔다.
생각보다 규모가 큰 것에 놀랐고, 조금은 가벼운 내 지갑을 보면서 아쉽지만, 그래도 쓸만한 펜 2개를 구해온 사실에 즐거웠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이 교통량 증가로 인해서 잠시 짜증이 나 있었다. 햇볕은 무척이나 따가운데 피곤까지 겹치니 어느 누가 기분좋게 있을 수 있을까?
안그래도 신호가 걸려서 우울한데 옆을 바라보니 너무 그림같은 풍경이 펼처져 있었다.

어짜피 신호 한번 걸리면 바뀌는데 2분정도 걸리는것을 알아챈 나는 카메라를 잽사게 끄집어 내서 한 컷 (사실은 두컷 찍었는데 그중에 잘 나온 사진으로) 찍어 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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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여기는 델라웨어다. 미국의 첫번째 주라고 주장하는 작은 주이다.
기름값이 필라델피아에 비해 싸서 행복했다. 겔런당 15센트 이상 싸다니!!!

사랑하며, 존경하는 목회자의 은퇴를 바라보며

Posted 2008. 8. 2. 06:02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오랜만에 한국에서 다니던 교회 홈페이지에 방문했다.
지난번에 본교회의 담임목회자 였던 김현철 목사님의 은퇴 소식을 듣긴 했었는데, 그게 그렇게 신기했는지 국민일보에서 인터뷰를 해 갔다. 그 인터뷰 내용중에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이 있어서 복사해 온다.

목회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목회라고 말할 때, 마치 '목회자인 내가 저들에게 무엇을 해 줄 것인가'라는 구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 정확히 '내가 나에게 어떻게 하는가'가 목회예요. 목회의 핵심은 보여주는 겁니다. 가르치거나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 제자인 나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라며 성도들에게 광고판이 되어 주는 것이지요. 성도들에게 관심을 갖기 전에 목회자인 나와 가족이 어떻게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대로 살아나가는가에 포인트가 있습니다. 이것이 이뤄지면 목회는 그냥 뒤따라오는 것이지요. 청중은 설교를 듣기 원하지 않습니다. 설교를 보기 원합니다."

사실 그렇다. 교인들은 단순히 목회자가 한 말을 믿고 살지는 않는것 같다. 교인들이 교회를 선택할때 단순히 그 목사님의 설교를 듣기 위해서 가는건 말도 안된다고 생각된다. 생각해 보라, 입에서는 사랑을 전파하며,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방법을 말씀 하시는 목회자가 퇴장 하실때는 10억짜리 스포츠카를 타고 나가시며 교인들이 90도 꺽인 인사를 즐기 신다면 얼마나 황당할 껀가? 그런데 그런 목회자 아래서 있는 교인들은 무엇을 보는걸까? 아마도 예수 잘 믿으면 목사님 처럼 10억짜리는 안되도 1억짜리 외제 자동차는 타고다닐 복이 내리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까? 왠지 전셰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인도하는 목회자 아래서 신앙생활이란걸 하면 자신의 회사도 대기업 수준으로 키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비젼을 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내가 김현철 목사님과 함께 한 10여년의 시간동안 그에게 배운것은, 사람은 믿는대로 살아 나간다라는 작은 진리였다. 그는 내 인생의 가장 큰 선배로서 나에게 자신이 믿는 하나님을 삶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살아내 보였다. 그의 후배로서, 그리고 영적인 아들로서 존경과 사랑을 표하고 싶다. 누군가가 내 삶을 보면서 하나님을 따라가는 삶을 배울 수 있기를 오늘 하루도 기도합니다.

내가 지나친 경쟁심을 유발하는 교육 정책을 반대하는 이유

Posted 2008. 8. 1. 01:43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나는 지나친 경쟁심을 유발하는 교육 정책을 반대한다. 그 이유가 뭘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그중에 몇까지 적어 본다.

1. 한국 부모들의 학구열을 무시하는 처사다.
외국에서는 공부에 대해서 필요한 사람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특히 선진국 이란 나라들은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도 충분히 먹고 살 정도의 월급이 보장되어 있다. 현대 자동차 생산라인에서 일하시는 분들 만큼은 아니지만 대부분 먹고 살면서 애들 교육시키는 정도는 무난하게 가능하다. 하지만 개발 도상국이나, 후진국 일 수록 육체적 노동을 하는 사람과 정신노동을 하는 사람의 임금 격차는 심하게 난다. 간신히 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이런 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한 한국 부모들은 자녀들이 공부를 해서 좋은 직장을 갖기를 염원하게 되어 있고, 잘사는 집은 나름 그 집안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녀들을 채찍질 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모든 부모의 염원과는 다르게 우등생 반에 들어가는 학생수는 정해져 있고, 좋은 대학의 정원은 쉽사리 늘어나지 않는다. 과연 이 부모들의 염원을 들어주지 못한 학생은 집안에서 어떤 대접을 받겠는가?

2. 자녀들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한다.
교회에서 그러더군. 아마도 99.99999%의 가족이 문제를 가진 가정일 것이라고. Broken Familly 라고 말 하는데, 특히 자녀가 부모에 대한 원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가정이 상당하다고 한다. 물론 부모들까지 자식이 자기 증오하는지 아는 집안은 소수 겠지만, 상당히 많은 자녀들이 부모님을 기피 한다고 한다. 그 원인 중에 가장 큰 것이, 자녀가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 하고 살아왔다는 자괴감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의 그릇을 인정해 주고, 또는 자신이 하고싶어 하는 것들을 인정받고 싶었지만, 오로지 부모님이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해서 못난놈 소리 들어가면서 큰 아이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부모님에 대한 사랑이 없을 수 밖에 없다. 단순히 사회적으로 효도를 안 하면 나쁜놈 되니까 그럴 수 밖에. 나처럼 특이한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은 청소년 시기에 반항하며 부모님과 대립 했지만, 그거 다 잊어버리고 지금 열심히 한다고 자랑질 하긴 한다만, 나같은 사람은 극 소수란거 다른사람들과 대화하면서 놀랐을 뿐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 춘다고 하는데 우리네 부모님들은 이런 우/열반이 나뉜 상황에서도 칭찬으로 자녀들을 인도해줄 자신이 있으신가?

3. 안그래도 싫은 엄친아/딸 들을 증오하게 만들것이다.
아이들이 가장 증오하는 대상은 엄친아-엄마친구 아들- 혹은 엄친딸-엄마친구 딸- 이란 우스게 소리가 있다. 하도 내 친구 누구 아들이 전교 1등 했다더라 하는 말들을 많이 하니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보자. 멈마는 엄마 친구만큼 나한테 잘 해주시나요? 아이들은 비교 당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한다. 그냥 엄마와 나, 혹은 아빠와 나 1:1로 생각하며 우리의 미래를 놓고 얘기해 보자. 자꾸 그러면 아빠친구 xx 사장님 이나, 엄마친구 xx 교수님 등등과 비교하고 싶어 지니까. 예전에는 전교 1등, 10등 이런거만 가지고 말 했을텐데 조만간 우등생 반에도 못 들어간 녀석이란 오명을 가지고 죽으란 소리까지 들을 애들을 생각하면 답답하다.

4. 특목고 등을 늘린다고? 자립형 사립고?
특목고와 자립형 사립고를 늘리면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이 더 똑똑해 질까?
어짜피 배우는건 수능 시험 잘 보는거랑, 논술 잘 쓰는 것 밖에 못 가르치는 학교 주제에 뭘 하겠다는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거 늘어나면 거기 못 가는 애들만 더 비참하게 부모님께 구박 들을 뿐이지. 점점 입시 시험만 잘 치룰 줄 아는 바보들만 양산해 내려는 수작인가 싶다. 자립형 사립고 만들꺼면 정부에서 세금으로 10원한장 내 주지 말기 바란다. 돈 많은 사람들이 사회 환원좀 하게 만들자. 사회 환원까지는 안 되더라도 쓸데없는데 돈 쓰느니 세금 낭비좀 줄이는데 쓰게 해 보자는 거다. 지들이 학비 미국마냥 1년에 2천만원씩 고등학교 학비로 내게 한다면 내 찬성할께. 아.. 2천만원은 미국 사립 초등학교 비용도 안되지? 암튼 자립형 사립고 만드는게 국고지원 한다고 하면 절대 납세거부 운동이라도 해야 겠다. 교육세 낼 수 없다고 버티는 수 밖에.

5. 영어 몰입식 교육이라.
한글로도 이해 못하는 애들한테 영어 몰입식 교육은 애들 바보 만들기 딱 좋다는 생각 뿐이 안 든다. 그리고 당장 영어로 애들 가르칠 수 있는 선생들이 몇명이나 될런지. 나도 미국서 석사 받으면서 영어 사용하고 있지만, 내 영어는 broken English다. 하물며 현제 영어로 공부 안 해보신 선생님들이 애들 영어로 수업 하시면 영어가 아니라 콩글리쉬로 수업 배우는 거고, 전 세계적인 망신살만 뻐칠꺼다. 한 10년 더 연구해서 선생들 양성부터 하고 하시기를. 정책 바꾸는게 대통령 임기 5년내에 이뤄야 한다고 생각하는 놈이라면 접시물에 코 박고 내가 뭘 잘못 생각하는지 반성해 보도록.

6. 아이들의 인성은 점수로 환산이 안된다.
언제부터인가 학교가 아이들의 인성과 지혜를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아이들의 성적을 평가하는 시험장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모든 것을 점수화 해서 학교마다 차등 지원을 하겠다고 하는데, 그럼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아이들에게는 그나마 지원해 주던 것 마저 빼았아 가겠다는 것인가? 나라의 전체적인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 힘을 낼 수 있도록 하는것이 2~30년 뒤를 보았을때 현명한 것이다. 그 아이들은 나라에 충성할 것이다. 본인들에게 기회를 준 나라를 사랑하고, 자신들의 후배들에게도 똑같은 희망을 주기 위해서 더욱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잘 사는 사람들에게 지원 아무리 해 줘 봐야 그들이 나라에 감사할 줄 알 것 같은가? 차라리 이명박한테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세요 라고 말하는게 더 쉬울꺼 같다. 불가능 하다. 그들은 당연하다 생각 할 뿐이다. 그리고 수틀리면 외국으로 나가 버리면 될 뿐이다. 이미 영어도 잘 하게 되었겠다, 유학도 나갈만한 사람들은 유학도 갔겠다 대한민국이 그들에게 뭐 아쉽겠는가? 단물 빼 먹었으면 버려도 되는 그런 나라일 뿐이다.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해 보면, 대한민국의 교육 정책은 100년을 내다보고 설계를 하지 않았다는 생각 뿐이다. 나 역시 대한민국을 사랑하던 한 사람이지만, 이제는 대한민국을 답답하게 보게 될 뿐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대한민국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싶어 했던 나였지만,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한국을 위해서 무언가 해 봐야 욕심많은 사람들의 배를 채우는데 쓰임 받기만 하겠다고 생각하니 역겹고 쓰라릴 뿐이다. 바보같은 대한민국 국민들과, 약싹 빠르고 잇속만 챙길 줄 아는 대한민국의 치졸한 위정자들을 사랑하기란 너무 어렵다. 사랑이란게 좋아하는 것을 사랑한다 말하면 그건 단순히 좋아하는것이고, 싫은것도 사랑해야 사랑이라고 하는데 아직까지 내게는 그런 큰 사랑은 없나보다. 아직은 정치인이 내 앞에서 거드름 피우면 한대 때려 주고싶은 마음만 드는거 보면 말이다.

나 한사람 만이라도...

Posted 2008. 7. 31. 02:21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대한민국만 그런걸까?
그런건 아니겠지 하면서도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참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나 한사람 만이라도~'라는 정신이 없다. 그대신 참 많이 가지고 있는것이 '나 하나쯤이야~'라는 정신이 아닐까?

이 두가지는 비슷 하게 생겼지만 그 결과는 참으로 다르다. 나 하나 쯤이야 라고 생각하면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 이 쉬운 예가 신호등 안 지키기, 무단횡단, 담배 꽁초 아무데나 버리기, 투표 안하기 등등 이다. 본인들이 해야 할 일들 안 하다가도 막상 본인에게 피해가 오면 무조건 남의 탓을 해 댄다. 이런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은'병x같은 놈. 지잘못 한건 생각 못하고 남 욕만 해요.' 솔직히 난 내가 잘못한건 내가 잘못 했다고 한다. 대학교 다닐때 성적 안 나온게 재미없게 가르친 사람의 탓이 10%정도, 나머지 90%는 내가 선택해서 안했다. 결국 90%의 잘못을 한 내가 선택한 일이다. 덕분에 나중에 고생하긴 했다.

그러나 내 마음속으로 부터 '나 한사람 만이라도~ ' 라는 마음자세로 다른 사람들이 무단횡단 해도, 다른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쓰래기 아무데나 버려도, 다른사람 투표안하고 놀러 가더라도 내가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을 분명히 구분해서 지켜 나간다면 이 사회가 변하지 않을까 한다. 학교에서는 이런 것들을 가르쳐 줘야 하지 않을까? 선생이란 무었인가? 앞에서 먼져 살아간 선배들이 후배들을 위해서 지도해 주는 곳이 아닌가? 선생이란 직책을 맡은 사람들이 앞에 서서 본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칠판에다가 '나 한사람 만이라도~'라고 적어 놓고 아이들에게 암기를 시켜 봐야 아무도 변하지 않는다. 선생이란 사람들이 먼저 솔선수범해서 신호도 지키고, 쓰레기 떨어져 있음 주어서 치우고, 나이드신 분들이 힘들게 가실때 도와 주고 그런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야 그들이 변할 수 있다. 칠판에 적는것이 다가 아니다. 솔선수범한 분들을 나는 선생님이라 부른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대한민국이 x구멍으로 밥을 잡수시겠다고 이게 정상이라고 아무리 세뇌를 시켜도 밥숫가락으로 밥 먹으면서 x구멍으로는 배변을 할 것이다. 그것이 정상이라고 믿고,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미친소, 미친국민, 거기서 희망이 있을까?

Posted 2008. 7. 31. 01:10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오늘도 역시 대한민국에 실망을 했다.
사람들은 강남쪽의 응집력이 무섭다고 하는데, 솔직히 나는 다른 지역사람들의 망각이 더 무섭게 느껴진다.

오늘 투표율이 15%대에 머물렀다는 소식을 듣고는 아 망했구나 하는 생각이 먼져 들었다.
솔직히 1번 후보도, 6번 후보도 그다지 맘에 드는 놈들은 아니다. 그나마 낳은 사람이라 생각된 후보는 5번. 개인적으로 나는 중도 성향을 유지하고 싶은데, 울 부모님은 나보고 왼쪽으로 가고 있다고 하신다. 부모님이 너무 오른쪽에 계시니 내가 왼쪽에 서 있는것으로 보이시나 보다. 암튼 5번이 그나마 중도로 갈 가능성이 가장 높아 지지 해 주고 싶었지만, 내가 원하는 사람이 당선 가능성이 적을 경우에는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놈 중에서 나라를 덜 망칠것 같은 사람을 밀어주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하지만 결과는 가장 오른쪽에 서 있는 할배가 당선되셨다.

대한민국 부모들은 다른것 보다 학구열이 높아 교육 문제라면 발 벗고 나설것 이라고 하였지만, 그 에상은 보기좋게 빗 나가 버렸다. 지금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아는가? 아이들의 마음을 아는가? 이렇게 교육 시킨 아이들이 과연 당신들을 웃으며 부양해 줄 것으로 보이는가? 그들의 원망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싶다. 공부를 많이해서 머리에 정보가 많이 쌓여있는 부모들은 자기 자식이 남의 자식을 짓밟고 올라서기를 바라고 - 물론 그들은 자기 자녀의 행복을 위한 것이지 다른 아이들의 행복을 짓 밟으란 적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수능 작정 100일기도 드리는 부모들의 마음을 봐라. 순전히 날도둑 강도 부모들 뿐이다. 아이들이 믿음으로 시험 잘 보기를 바란다구요? 미친.. 그 시간에 자신에 대해 돌아보고 반성하고, 아이들에게 따스한 마음으로 즐겁게 공부하게 도와주기나 하세요. 애 공부도 안하고는 다른 자식보다 성적 잘 나오기를 바라는 것 만큼 못되 처 먹은것도 없으니. - 그 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편을 짜고 놀고들 계신다.

무지 몽매하고 짧은 기억도 못 하시는 우리내 평범하신 국민들 께서는, 교육환경에 대한 관심도 없으셔서 애들을 방치하다 못해 이제는 애들을 고통의 나락으로 보내시고 계신다. 미국식의 영재 교육? 그게 한국에서 가능하다고 생각 하는가? 지금 미국에서도 영재교욱쪽에서 보면 본인의 능력보다는 학원과 과외의 뽕빨에 힘입어 곰부를 잘 하는 것 같아 보이는 학생들 덕분에 분의기가 별로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기존 미국인들의 정서와는 다른 아시아 사람들의 이주가 그 원인이다. 우리나라 교육부는 강남 엄마들의 불타오르는 경쟁심을 아직도 이해 못 하고 계신다. 전 세계에서 명품 핸드빽과 짝퉁 핸드뺵이 가장 많이 팔리는 이 나라를 아직도 이해 못 하는건가? 그런 국민성을 이해 못하는 정책을 펼칠 경우에 과연 우리의 아이들은 어떻게 취급을 받고 자랄지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답답할 노릇이다. 다들 아직 들어 오지도 않은 30개월 이상된 미국산 소고기의 위험물질의 액기스를 잡수셨는지 미래를 보는 눈이 그렇게도 없단 말인가???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점점 대한민국에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점점 불 투명해지는 미래를 보면서 나는 답답해 하고 있다. 과연 내 나라를 단지 내가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사랑해야 하는가? 아직까지는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착하게 산다고 하지만, 그 사람들도 변해가는 이 세상이 답답하다. 요즘은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기를 자신이 점점 사라저 가고 있다. 어머니랑 같이 얘기 하면 나 키울때도 대한민국 엄마들은 미쳐 있었고, 미친 선생놈들도 부지 기수라고 말씀 하시곤 했다. 다 본인 하기 나름이라고. 그래 나떄도 그랬다. 나도 안다. 하지만 그때는 나 같은 아이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나같이 살아가는 녀석은 미친놈 취급을 당할 것 같다. 흔히 하는말로 정신병원에서는 정상인 사람이 미친놈 취급 당한다고 하지 않는가? 절대 다수가 미처가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낳고 키울 자신감이 사라져 간다. 지금으로선 대한민국이란 나라를 포기하고 살던지, 대한민국으로 돌아가려면 아기 낳는걸 포기 해야 하던지 둘 중에 하나를 포기 해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간다.

아~ 대한민국이여 슬프도다. 너무나도 슬프도다. 나는 애통하고 또 애통할 따름이다.
10년뒤, 20년 뒤를 바라보지 못하는 이 어리숙함이여. 교육이 잘못되면 100년뒤가 잘못 될 것이란 말이 있다. 이 교육을 이끌어 나아갈 사람이 저런 사람이 되었다는 것에 심한 회의를 느낀다. 그런데 그 어느 누구도 교육으로서 대한민국을 바르게 이끌어 갈 능력이 되는 큰 선생님이 없다. 교육에 자꾸 정치인의 입김이 들어가서 그런게 아닐까 싶다.

아~ 나는 오늘도 슬픔에 빠져 살아갈 뿐이다.

디지탈 세계에서 아나로그에 빠져들다

Posted 2008. 7. 28. 03:34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지금 비가 내리고 있다.
아침에만 해도 햇볕이 쨍 했는데 점심먹고 책상 정리를 하다가보니 천둥과 번개가 치면서 비가내린다. 그래서 책상위에 초를 키고, 이루마의 피아노 연주곡을 틀어놓고 글을 써 내려간다.

나는 디지탈을 좋아한다. 그 편리함을 좋아한다. 어릴적부터 기계라면, 전자제품이라면 미친사람마냥 뜯어보고, 확인해보고 그렇게 살아왔다. 사실 난 아나로그에 약하다. 특히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는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나는 컴퓨터를 좋아하게 되었다. 내가 적어 내려간 글을 내가 읽지 못 할만큼 악필이기에, 그 악필도 빠르게 적어 내려가는 것에만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글의 진행방향은 점점 위로 향하게 되는 그런 글을 적어 내려갔었다. 그러나 컴퓨터는 내가 아무리 빠르게 적어 내려 가더라도 일쩡한 클자를 내게 보여준다. 다 적고 난 다음에 내가 무엇을 적었는지 고민도 하지 않게 해 준다. 그래서 나는 디지탈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만년필에 푹 빠져 버렸다. 글씨도 잘 못 쓰는 주제에 무슨 만년필 타령인 것인지. 내가 생각해도 웃기다. 그래도 하나 구입해서 쓰고 싶었다. 그래서 무작정 나가서 만년필을 구해 보았다. 그런데 이미 미국도 만년필은 특별한 사람이나 쓰는 제품이 되었나 보다. 일반적인 만년필을 파는곳이 없다. 대형 문구센터를 가 봐도 그곳에는 극 소수의 만년필 만이 팔리고 있을 뿐 이었다. 그러다가 한국으로 치면 화방에 들어가서 스케치 하는데 사용하는 만년필을 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열심히 적어 보았다. 신경써서 한 획 한 획 그어 내려가 보았다. 여전히 내 글씨는 이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무슨 글씨 인지는 고민 안 하고 읽을 수준은 되었다. 그렇다. 천천히 신경써서, 그리고 만년필은 내가 쓰는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이렇게 난 만년필에 빠졌다. 글로 적는것이 너무나도 스트레스가 되어 그 흔한 연하장이나 크리스마스 카드 조차도 써 내려가기가 싫었던 나 였는데.. 요즘은 하루에 성경책 한장씩 써 내려 가는것으로 한글 글씨 연습을 하고, 영어 단어 공부를 하며 영어 글씨 연습을 하게 되었다. 1석 2조라고 했는가? 성경책을 꼼꼼히 곱 씹어 가면서 적어 내려가는 맛도 좋고, 영어 단어를 공부하는 것도 내게 도움이 되리라.

디지탈을 사랑하던 나는 이렇게 아나로그에 빠져들고 있다. 대중적인 보편성을 떠나서 이제는 나만의 무언가를 가지고 싶어졌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 설래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녀석들이 있다.
제대로 된 만년필을 사용해 보고 싶어서 구한 만년필들. 한자루는 아버지가 주시기로한 녀석.
벌써 20년정도 된 만년필 이다. 아버지 말로는 할아버지 금혼식 때 받은것 이라고 하는데 내 기억에 그때가 나 중학교 다닐떄 였던 것 같다. (대략 중3떄가 아닌가 싶은데 정확하지 않다) 남들이 자랑하던 아버지께 물려 받은 만년필인데, 나는 정확하게는 할아버지, 아버지를 거처서 3대로 내려오는 만년필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물론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제대로 사용한 녀석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분이 싱숭생숭. 이녀석은 내 사랑하는 아내가 한국에서 가져다 줄 것이다.
그리고 또 한녀석. 이녀석은 여자니까 녀석이라고 부르면 안 될까? 왜 여자냐구? 흠... 그건 이 만년필의 이름에 Lady라는 이름이 붙어 있어서 그렇게 부르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나보다 누나일꺼 같기도 한 그녀. 1970년대에 생산된 제품인데 Sheaffer사에서 만든 Lady No. 620이란 만년필이다. Ebay에서 고르고 골라서 입찰을 했는데 나와 인연이 있나 보다. 워낙 보편적인 모델을 별로 안 좋아하는 나 인지라 이런 만년필을 고른것 같다. 일반적으로 아져씨들 들고 다니시는 만년필과는 다르게 조금 날씬한 모양을 가진 만년필 이다. 집으로 오게 되면 내 꼭 사진 찍어서 올리겠지만, 미국 애들은 brushed라는 표현으로 그 질감을 표현해 놓았다. 미끈하게 빠진 것이 아니라 마치 붓 자국이 남아 있는 듯 한 외관에 은으로 된 장식을 가지고 있다. 다행이 비싸게 구하지는 않았지만, 남들 잘 안쓰는 제품을 산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이 두 친구가 어서 와 주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나도 다른 이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글을 적어주고 싶다.

Ps. Sheaffer Lady No.620 누나의 사진이다. 내가 찍은것이 아니라 Ebay에서 판매자가 찍은 사진이다. 실물 받으면 이쁘게 찍어 보겠으니 일단은 이 녀석으로 궁금증을 풀어 보시기를 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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