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Results for '우리들의 추억/즐거운 추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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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5.28 몇배? 2배? 3배?
  2. 2008.04.04 그떄는 몰랐던 것들
  3. 2008.03.03 지원~ 지원~
  4. 2008.02.24 눈이 내리다
  5. 2007.12.18 공식적인 학기의 마지막! 그리고 맛난것!
  6. 2007.12.13 롤 모델 1
  7. 2007.10.18 우리 만난지 5년... 3
  8. 2007.10.06 미국 대학교 풍경
  9. 2007.10.06 미디어 교육
  10. 2007.09.15 D-War 보러가던 날 1

몇배? 2배? 3배?

Posted 2008. 5. 28. 08:24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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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가씨 이름은 메이 달링 울프~ ㅋ 왠 이름이 이러냐 하문
엄마랑 아빠 성이 '달링 울프' 이고 이름은 메이다. 엄마가 아시아, 특히 일본 문화를 공부하시는 교수님인 관계로 매 여름마다 TU japan에서 강의를 하시고, 그러다 보니 일본식 이름을 지어 주셨다. (참고로 언니 이름은 헤나)

지원이 선배언니 졸업기념 파티에 갔다가 이녀석이랑 놀아주게 되었다.
그날 저녁에 잘때 삭신이 쑤셔서 죽을 뻔 하긴 했지만... ^^;
같이 돌던 기념으로 사진을 같이 찍었는데... 내 얼굴이 거의 2~3배는 더 커보인다.

그런데 좀 의문사항. 왜 어디를 가도 애들은 나를 타고 노는것을 좋아할까?
1. 인형같다. (큼지막한 곰인형)
2. 타고 놀아도 안 죽을것 같이 튼실하게 생겼다.
3. 만만해 보인다.

흠... 어케 가는 곳마다 애들이 빤히 처다 보다가 조금만 친해지면 내 위에서 날아 다니시는지
앞으로 내 아가가 태어나면 난 고난이 뒤따를 듯 하다.

그떄는 몰랐던 것들

Posted 2008. 4. 4. 11:55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어머니가 말씀 하시곤 했다.
사랑을 하면 사람이 변한다고...
어릴적 나는 그 말이 무었인지 몰랐다.
그냥 나 하고싶은대로 살면 되고 그냥 그렇게 살아 가기만 하면 되었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 조금은 그 말이 무었인지 알 듯 하다.

2002년 12월에 구미로 내려가서 파견근무를 시작한 이후 지금의 아내인 지원이와 매일 전화로 그 아쉬움을 달래곤 했는데 어느날 어머니 생각이 나서 어머니께 매일아침 문안인사를 드리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니가 사랑을 시작했구나 했다. 난 그때는 어머니가 왜 이런말을 하시나 했다.

2003년 7월에 지원이와 함께 태국집으로 갔다가 홀로 돌아왔다. 태국에 남아있던 지원이에게 전화 통화를 하는데 눈물이 났다. 누군가와 떨어져 있는 것이 그렇게 슬펐던 것이 처음인것 같았다. 그전까지는 누군가와 헤어진다는 것은 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는데...

지금은 무언가 다름이 느껴진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로인해 기쁘다는것이 너무 행복하다. 그래서 그런가? 지원이를 위해서 음식을 만들어주고, 함께 공부를 하고...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아버지가 '다우미와 지원이는 나의 큰 기쁨이다' 라고 말씀해 주신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돈다. 전에는 느끼지 못한 감정. 나로인해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이 행복해 진다라는 너무나도 간단한 사실이 느껴진다.

지금 난 너무나도 행복하다. 어린시절, 나밖에 모르던 시절을 지나 이제 함께라는 말의 의미를 하나둘씩 배워나간다. 난 너무 행복한 남자다. 아내와 내가 결혼식장에서 '함께'하자고 했던 약속을 내 몸으로 살아내 가기 시작하고 있다. 처음에는 지원이랑 나랑 둘이서, 그리고 하나님과 지원이와 다우미가, 이제는 내 가족들 모두 함께 말이다. 소망이 있다면, 10년 뒤에는 내가 이 글에다가 추가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다우미와 지원이와 우리 가족들과 그리고 사랑하는 내 민족과 '함께'하는 행복에 겨워 살고 있다라고.

사랑합니다 목동에 계신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방콕에 계신 아버지 어머니.

지원~ 지원~

Posted 2008. 3. 3. 13:12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오늘 지원이 후배가 잠시 들렸습니다.
워싱턴에서 남자친구와 같이 보스턴 까지 올라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들렸네요

^^; 두분 다 첨 뵈었지만 즐거운 시간 이었습니다.

그리고 제목이 지원~ 지원~ 인 이유는...
지원이 후배 이름도 '지원' 이랍니다.

그리고~ 남자친구 미소가 참 이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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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어울리는 한 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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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의 학교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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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풍스런 넘의 학교! 오늘 하늘 이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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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구경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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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광!


눈이 내리다

Posted 2008. 2. 24. 10:40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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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났더니 세상이 온통 흰색으로 덮여 버렸다~ 눈이다~
사실 그 전날 집안 욕실 보수작업으로 인하여 집에서 공부 하기로 맘 먹은터라
눈이 내렸어도 큰 걱정은 없었다!

그래도 기분인데 사진 찍어 놔야지~

운전만 안 한다면 눈 내리는 것도 참 운치가 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끼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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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인 학기의 마지막! 그리고 맛난것!

Posted 2007. 12. 18. 00:21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울 쪈은 지금 교수님 만나러 갔어요~
이번 학기 마지막을 정리하러~
TA하면서 채점한 결과물을 (누구한테는 기쁨을, 누구한테는 절망을 전달하러) 갔네요

한학기 동안 수고 했습니다~ (물론 나도~ ㅋㅋㅋ 이유는 저 시험지 각 파트의 점수 내가 다 더해서 주었다는~)

정말 식당에서 조차, 그리고 자동차 엔진오일 가는 곳에서도 열심히 채점한 당신~ 이제 다음 단계로~ (실은 한국 언론재단에서 쪈에게 글하나 적어 달라는 요청이 있는데~ 시간이 너무 뻑뻑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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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채점중~ 저건 몇점짜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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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마셔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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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난 셀러드~ 이 드레싱은 한국이랑 일본집에서만 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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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만 가져다 대면 저런 장난스런 표정이.. 다빛 다안이는 삼촌 닮은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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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우미가 시킨~ 도시락~ 레어로 주세요~ 라고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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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어를 요청 했으나~ 거진 미디엄 수준으로 구워온 스테이크... 역시 일본놈들에게는 레어는 무리인가? 한번도 레어로 나온적이 없어~



참고로 이 사진들은 모두 아버지 카메라 테스트를 위하여~ 새로산 카메라로 찍었습니더~

롤 모델

Posted 2007. 12. 13. 13:52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살면서 가장 하기 싫었던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합법적인 것 중에서는 '공부'라고 말 할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대학은 들어 갔지만~ 공부를 안 해버린지라~ 학점이 바닥 근처를 구경시켜 주기도 했었다. 그런 내가 대학원 수업을 듣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임.

그 중심에 내 아내인 지원이가 있다는 것은 그저 감사할 나름이다.

그 공부하기 싫어 하는 나를, 오로지 함께 있고 싶다는 이유로 도서관에 데리고 갔으며, 지금은 대학원 수업을 듣고 있게 하였다. 그런데 사람이 참 신기하다. 항상 보는 사람이 지원이 이고, 그런 지원이를 보자면 아무리 내가 열심히 공부해도 부족한 생각이 드는것은 왜일까?

그렇게 한학기가 지나간 지금, 첫 학기를 무사히 마쳤다. 처음에는 수업을 따라가기도 어려워서 무지막지한 예습과 복습을 거듭했다. 솔직히 대학 다니면서 예습은 거의 안했으며, 복습은 가뭄에 콩 나듯이 했다. 숙제 때문에 한 복습이었긴 하지만... 암튼 열심히 하긴 했다. 중간중간 조금씩 논 것이 찔리긴 하지만~ 나름 릴렉스의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 해야지. 아직 전체 성적은 나오지 않았지만... 중간고사 성적이랑 숙제 점수를 대충 보니~ 잘하문 두과목 다 4.0을 받을지도.. 나 스스로도 믿기지 않은 성적들 이었다. 그리고 오늘 프로젝트 발표날.. 감히 잘하면 1등도 해 보겠군 싶은 마음이 들었다. 유일하게 프로젝트를 완료 했으니 말이다.

암튼 각설하고, 사람은 누구를 사랑하고, 얼마를 사랑하는지에 따라 충분히 변한다고 생각한다. 나를 봐라~ 총 학점이 2.8x의 점수를 자랑하던 녀석이... 결혼하고나서 이렇게 변한것은 내가 나의 아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주는 것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난 그냥 와이프 따라 다니면서 공부했을 뿐인데~

암튼 떨리는 맘으로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두과목 모두 A-이상이면 합격 시켜 줄 수 있다고 했는데 잘 될 것이라 믿고 있다. 내일이면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 두근두근~ 자 한국에 F1으로 비자 변경하러 가자고!!!!!

우리 만난지 5년...

Posted 2007. 10. 18. 08:35 by 쪈

오빠~ 내 블로그에 올린거, 여기에도 똑같이 올려요.

우리 만난 지 벌써 5년..
먼저 손내밀어줘서 고맙고..
결혼하자고 해줘서 고맙고..
결혼해줘서 고맙고..
매일매일 더 사랑해줘서 더 고마워요.

나도 아주 많이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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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0월 17일. 목산교회 편집실에서 그를 처음만났다.
편집의 특성상 편집기에 일 시켜놓고 기다려야 할때가 많았는데, 그때 참 많은 이야기를 했다.
당시 만난 곳은 목동, 내가 살던곳은 삼성동..
교통편이 복잡해서 전철끊기기 전에 가겠다고, 다음에 다시 오겠다고 했더니 하던거 마져 하고 가라고 그가 날 잡았다. 집까지 데려다준다고. "삼성동까지요?" "응, 데려다 줄게. 마져 하고 가." "어차피 오늘 끝내지도 못할거 같은데 다음에 다시 올게요." "그래도 최대한 많이 해놓고 가면 좋잖아." 그렇게 날 설득하던 그의 말대로 난 새벽한시까지 거기에 있었고 그는 삼성동까지 날 데려다 주었다.
주위에 owner driver 가 거의 전무하던 시절, 밤늦게 승용차 앞에 앉아 서울밤거리를 달려본게 태국으로 떠난 이후로 처음이었으니까 8년도 넘게 난 서울야경을 버스가 아닌, 자가용안에서 본거다.  편집하면서, 그리고 차안에서 말이 참 잘 통했다는거.. 그리고 그날 본 야경이 참 이뻤다는 거.. 너무 이쁘다고 흥분하는 나를 참 재밌게 그가 쳐다봤다는게 기억이 난다.

그후로 편집때문에, 그리고 원본 테잎을 받으러, 그렇게 몇번을 더 만났고 통화도 몇번 했다. 업무적인 이야기 말고도, 사는 이야기, 세상이야기, 신앙이야기 등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너무 괜찮은 사람인듯해서 내 친한친구를 소개시켜주려고 했었더랬다.  소개팅하라고 설득하던 (전화로) 나에게 그가 내던진말... "난 네가 좋은데 넌 왜 자꾸 네 친구를 소개시켜주려고 하니?"

훗.. 사귀자는 오빠의 말에 o.k. 를 하기까지 3주도 더 걸렸었다.
막상 사귀고 나서, 싸우기도 많이 싸웠고..
이회창을 지지한다는 말에 너무 충격을 받아 대선 다음날 그에게 헤어지자고 까지 했었다.  (지금생각하면 웃기지만 당시 나의 충격은 엄청났다.) 하지만 그는 날 붙잡았고.. 그렇게 몇번의 크고작은 위기를 넘기고 난 유학을 갔다. 

유학을 갈때만 해도 이 사람과 언제까지 사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근데 몸은 멀어져도 진심은 이어졌다.  워낙 결혼이란 제도에 불신이 많았던 나였고, 또 35살전에는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나였기에 결혼직전까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지만..
결국 26살에 "이 사람이었기에" 유부녀가 됬고..
"이 사람이기에" 지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결혼하면 남자들이 많이 변한다던데..
울 신랑은 결혼하고 나서 더 착하게, 더 신실하게, 더 멋있게 변한 케이스다.
그와 함께 하는 이 순간이 너무 감사하고, 내가 태어나서 만났던 그 누구보다, 그리고 그 어떤 위인보다 울 신랑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결혼하고 2년이 더 지난 지금.. 매일매일 그가 더 좋아진다.  그와 삶을 나누고, 생각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고, 시간을 함께 하면서.. 이제껏 살아보지 못한 또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느낌이다.

살아있다는 것이, 그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와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이 미치도록 좋다.  연애할때보다 결혼하고 나서, 결혼초반기 보다 지금이, 그를 더욱 사랑하는 나 자신을 본다.
앞으로 50년, 아니 죽고나서까지도.. 영원을 함께 하고 싶을 뿐이다.

미국 대학교 풍경

Posted 2007. 10. 6. 10:41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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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앞에 있는 아카디아 대학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학교 기숙사 Home comming day행사 였을까요?

여자들의 브라자와 남자들의 팬티를 번갈아 하나씩 매달아 놓았더군요

^^; 속옷 색이 참 요란 하기도 하더군요

일반적으로 보는 얌전한 속옷은... 한두개? 나머지는 요란 뻑적지글~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짓을 참으로 잘도 합니다.

미디어 교육

Posted 2007. 10. 6. 10:37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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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지원이가 교회에서 미디어에 대한 교육을 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옷서 듣고 가셨는데요

대상을 유치부 부모님들로 생각을 했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많은분들이 보고 가셨습니다.

아이들이 미디어에 대해서 바로 알고 잘 사용할 수 있기 바랍니다.

D-War 보러가던 날

Posted 2007. 9. 15. 12:16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년 9월 14일
바쁜 와중에도 D-War를 보러 갔습니다.
개봉 첫날 보기로 마음먹고~ 학교에서 공부하다가 극장으로 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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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시간표


극장 시간표 입니다.

제가 간 시간은 5시 40분경.
저녁을 먹고 나서 영화를 볼 예정임.

동네가 좀 그런지... 성룡이 나오는 러쉬아워 말고는 모두 R등급입니다.
실제로 상영중인 영화 대부분이 폭력물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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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Comming Soon


영화 티켓을 산 직후 찍었습니다.

사진에는 안 나왔는데... 아래 보면 Comming Soon으로 나와 있습니다.
아침부터 상영을 시작 했는데... 아직도 안 고쳐 놨는가 하며 잠시 분노중..

저녁을 맛나게 먹고 근처 커피샵에서 책을 보다 왔습니다.

극장에 들어가려고 보니, 디워 싸인이 보여 한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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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떨리는 마음으로 입장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없는것????
그 와중에 셀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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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ㅎ 어둡게 찍혔지만 그냥 올립니다.

한가지 걱정이 있다면... 이 극장은 워낙 손님이 안오는 곳 인지라
(지난번에 슈랙3 보러 갔을때도 20명도 같이 안 본 듯)
손님이 얼마나 들어올까 걱정 되었습니다.

사실.. 영화 시작할때 관객수를 셀 수 있었습니다.

저희 포함해서 12명? 이런~
그런데 저희 두명을 빼고는 모두 비 아시아 인종이었습니다.
흑인 가족이 2가족 왔구요~
한커플의 연인이~ 그리고 나머지 한명은 혼자서 보는 아져씨...

영화를 보고나니 감동의 물결이...
물론 영화 보기전부터 극평과 혹평을 오가는 상황을 모두 보았었지만
충분히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가 끝나니... 외국 사람의 박수 소리도 들리고
(혼자 치긴 했습니다만)

앞으로도 이렇게 도전하는 영화가 늘었으면 하는 바램을 하며 극장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가려 하는데 보이는 간판들~

그세 D-war를 상영중으로 바꾸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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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한국에서 만든 영화가 종종 극장에 걸렸으면 하는 바램임니다.

대한민국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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