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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28 디지탈 세계에서 아나로그에 빠져들다 1

디지탈 세계에서 아나로그에 빠져들다

Posted 2008. 7. 28. 03:34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지금 비가 내리고 있다.
아침에만 해도 햇볕이 쨍 했는데 점심먹고 책상 정리를 하다가보니 천둥과 번개가 치면서 비가내린다. 그래서 책상위에 초를 키고, 이루마의 피아노 연주곡을 틀어놓고 글을 써 내려간다.

나는 디지탈을 좋아한다. 그 편리함을 좋아한다. 어릴적부터 기계라면, 전자제품이라면 미친사람마냥 뜯어보고, 확인해보고 그렇게 살아왔다. 사실 난 아나로그에 약하다. 특히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는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나는 컴퓨터를 좋아하게 되었다. 내가 적어 내려간 글을 내가 읽지 못 할만큼 악필이기에, 그 악필도 빠르게 적어 내려가는 것에만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글의 진행방향은 점점 위로 향하게 되는 그런 글을 적어 내려갔었다. 그러나 컴퓨터는 내가 아무리 빠르게 적어 내려 가더라도 일쩡한 클자를 내게 보여준다. 다 적고 난 다음에 내가 무엇을 적었는지 고민도 하지 않게 해 준다. 그래서 나는 디지탈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만년필에 푹 빠져 버렸다. 글씨도 잘 못 쓰는 주제에 무슨 만년필 타령인 것인지. 내가 생각해도 웃기다. 그래도 하나 구입해서 쓰고 싶었다. 그래서 무작정 나가서 만년필을 구해 보았다. 그런데 이미 미국도 만년필은 특별한 사람이나 쓰는 제품이 되었나 보다. 일반적인 만년필을 파는곳이 없다. 대형 문구센터를 가 봐도 그곳에는 극 소수의 만년필 만이 팔리고 있을 뿐 이었다. 그러다가 한국으로 치면 화방에 들어가서 스케치 하는데 사용하는 만년필을 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열심히 적어 보았다. 신경써서 한 획 한 획 그어 내려가 보았다. 여전히 내 글씨는 이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무슨 글씨 인지는 고민 안 하고 읽을 수준은 되었다. 그렇다. 천천히 신경써서, 그리고 만년필은 내가 쓰는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이렇게 난 만년필에 빠졌다. 글로 적는것이 너무나도 스트레스가 되어 그 흔한 연하장이나 크리스마스 카드 조차도 써 내려가기가 싫었던 나 였는데.. 요즘은 하루에 성경책 한장씩 써 내려 가는것으로 한글 글씨 연습을 하고, 영어 단어 공부를 하며 영어 글씨 연습을 하게 되었다. 1석 2조라고 했는가? 성경책을 꼼꼼히 곱 씹어 가면서 적어 내려가는 맛도 좋고, 영어 단어를 공부하는 것도 내게 도움이 되리라.

디지탈을 사랑하던 나는 이렇게 아나로그에 빠져들고 있다. 대중적인 보편성을 떠나서 이제는 나만의 무언가를 가지고 싶어졌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 설래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녀석들이 있다.
제대로 된 만년필을 사용해 보고 싶어서 구한 만년필들. 한자루는 아버지가 주시기로한 녀석.
벌써 20년정도 된 만년필 이다. 아버지 말로는 할아버지 금혼식 때 받은것 이라고 하는데 내 기억에 그때가 나 중학교 다닐떄 였던 것 같다. (대략 중3떄가 아닌가 싶은데 정확하지 않다) 남들이 자랑하던 아버지께 물려 받은 만년필인데, 나는 정확하게는 할아버지, 아버지를 거처서 3대로 내려오는 만년필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물론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제대로 사용한 녀석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분이 싱숭생숭. 이녀석은 내 사랑하는 아내가 한국에서 가져다 줄 것이다.
그리고 또 한녀석. 이녀석은 여자니까 녀석이라고 부르면 안 될까? 왜 여자냐구? 흠... 그건 이 만년필의 이름에 Lady라는 이름이 붙어 있어서 그렇게 부르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나보다 누나일꺼 같기도 한 그녀. 1970년대에 생산된 제품인데 Sheaffer사에서 만든 Lady No. 620이란 만년필이다. Ebay에서 고르고 골라서 입찰을 했는데 나와 인연이 있나 보다. 워낙 보편적인 모델을 별로 안 좋아하는 나 인지라 이런 만년필을 고른것 같다. 일반적으로 아져씨들 들고 다니시는 만년필과는 다르게 조금 날씬한 모양을 가진 만년필 이다. 집으로 오게 되면 내 꼭 사진 찍어서 올리겠지만, 미국 애들은 brushed라는 표현으로 그 질감을 표현해 놓았다. 미끈하게 빠진 것이 아니라 마치 붓 자국이 남아 있는 듯 한 외관에 은으로 된 장식을 가지고 있다. 다행이 비싸게 구하지는 않았지만, 남들 잘 안쓰는 제품을 산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이 두 친구가 어서 와 주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나도 다른 이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글을 적어주고 싶다.

Ps. Sheaffer Lady No.620 누나의 사진이다. 내가 찍은것이 아니라 Ebay에서 판매자가 찍은 사진이다. 실물 받으면 이쁘게 찍어 보겠으니 일단은 이 녀석으로 궁금증을 풀어 보시기를 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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